-재지정평가 격돌 남아.. 수시실적 중심 '옥석가리기' 시작되나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올해 중3 학생들이 치르는 고입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지난해 2월 제기됐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의 헌법소원에 대해 선고했다. 헌재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반면 이중지원 금지조항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올해 고입은 자사고 외고 일반고가 후기에 동시모집을 하는 체제로 운영된다. 지난해 헌재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허용됐던 지원자의 이중지원 역시 유지된다. 수험생이 후기모집에 자사고나 외고를 지원한 경우에도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단 광역단위로 모집하는 1단계가 아닌 지역단위 모집의 2단계부터 지원 가능하다.
헌재의 결정과 함께 자사고들의 재지정평가도 예정된 만큼 입시의 전망에 대한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고입의 판도가 학교유형이 아닌 수시실적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교육전문가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자사고 지원의 유불리에 대한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현재 고입의 구조에서 상위권 자연계열 학생들은 영재학교 과고 자사고 등의 선택지가 있는 만큼 학교유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특정한 고교유형이 대입에 유리하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실제로 같은 학교유형 사이에서도 학교경쟁력에 따른 선호도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수요자들이 학교들의 수시실적을 토대로 ‘옥석가리기’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교들이 선별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이 전면에 나서 자사고와 외고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키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다”고 지적했다.
<‘고입 동시실시’ 그대로.. ‘이중지원 금지 위헌’>
헌재는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선 합헌, 자사고와 외고의 일반고 이중지원 금지는 위헌으로 결정했다. 자사고의 지원시기를 일반고와 같은 후기모집으로 조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1항에 대해 헌재는 고교서열화와 고등학교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교육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당초 전기학교로 규정한 취지인 차별화된 교육을 자사고들이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채 일반고와 교육과정에서 큰 차이가 없이 운영되고 있다”며 “일반고의 입장에서 고교유형에 따른 부당한 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자사고를 전기학교로 유지할 정당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후기모집으로 이동한 것은 국가가 학교제도를 형성할 수 있는 재량 권한의 범위 내에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중지원 금지를 규정한 같은 법령 제81조5항은 평등권의 침해가 문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자사고에 지원하였다가 불합격한 평준화지역 소재 학생들은 중복지원금지 조항으로 인해 원칙적으로 평준화지역 일반고에 지원할 기회가 없다”며 “학생들이 거주한 지역의 학교군에서 일반고에 진학할 수 없게 된다. 통학이 힘든 먼 거리의 비평준화지역의 고교나 학교장이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고등학교에 정원미달이 발생할 경우 추가선발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진학 자체가 불투명해져 재수를 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의 의미,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진학률에 비춰볼 때 자사고에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러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 적절한 조치인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교육당국은 전반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다. 교육부 관계자는 “헌재의 최종결정을 존중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5항에 대한 개정을 신속히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도 “헌재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원 학생이 이들 학교에서 떨어져도 일반고를 중복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둔 부분은 일반고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결정은 지난 헌재의 가처분 판결과 동일한 만큼 지난달 26일 발표한 ‘2020학년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은 내용 변화 없이 그대로 올해 고입에 적용된다”고 말했다.
<자사고에 대한 ‘엇갈린 전망’.. ‘학교경쟁력 VS 정부 정책기조’>
교육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헌재의 결정이 정부가 추진하는 자사고 폐지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선 이중지원이 허용되면서 ‘고입재수’와 같은 결정적인 불확실성은 제거된 만큼 경쟁력 있는 자사고들에게 유리해진 상황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교육당국이 자사고 폐지를 위한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수험생들이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다.
경쟁력이 확실한 자사고의 경우 헌재의 결정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면학분위기나 진학실적 등이 입증된 자사고들의 경우 선호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며 “헌재의 판결은 상산고 등 전국단위 자사고들에겐 기사회생의 기회일 수 있다.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다소 완화됐기 때문이다. 재지정평가를 통해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일부 자사고들은 지역 내 명문 일반고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높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고1 학생들부터 대입에서 정시가 확대될 예정이고 약대 학부선발도 이뤄지는 만큼 이과 성향의 상위권 학생들은 자사고 선택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면 자사고 폐지가 지원양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정책기조가 변함없고 재지정평가의 변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입학한 이후에도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자사고 진학을 고려하던 학생과 학부모들이 다른 고교유형을 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자사고와 관련된 입시의 불확실성으로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은 영재학교나 과고를 보다 선호할 것으로 본다. 특히 영재학교는 특차모집의 성격이고 과고는 전기모집이다. 모두 탈락하더라도 후기고로 자사고를 지원하는 것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셈이다. 자사고 대신 대입실적이 우수한 일반고들이 있는 교육특구로 거주지를 옮기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공방 예고’ 재지정평가.. ‘최대 피해자는 수요자’>
지난해와 고입의 일정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여전히 입시혼란에 따른 수요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사고와 외고의 폐지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재지정평가를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평가기준을 강화하면서 자사고들의 반발도 거세다. 지난 5일 서울의 13개자사고들을 끝으로 재지정평가를 받는 모든 학교들이 운영성과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대부분 부당한 평가지표들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학교들을 평가결과에 따라 행정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수요자들의 불확실성은 가중될 전망이다.
당초 교육부는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었지만 헌재의 결정으로 첫 순서인 입시제도 개선부터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대신 교육당국이 올해 재지정평가를 통한 자사고들의 일반고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평가일정부터 예년보다 앞당겨졌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2019학년 자사고 운영성과평가는 내년도 신입생 선발 일정을 고려해서 올해 6월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고입 전형계획’이 발표되는 8월 이전까지 자사고 폐지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결국 올해 고입부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곧바로 시작하며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반면 자사고들 역시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재지정평가를 거부하던 서울 자사고들이 운영성과보고서를 제출한 배경도 향후 법적다툼을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법정공방에 돌입할 경우 보고서를 제출한 편이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사고 교장들 사이에서도 지정취소 결정시 행정소송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 한 관계자도 “평가보고서 제출은 자사고 운영성과평가를 수용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보고서를 낸 이후에도 부당한 평가지표에 대한 철회와 수정요구를 계속할 것이다”며 “차후 수용할 수 없는 평가결과가 나온다면 행정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예정이다. 특히 보고서 제출 이후에도 조희연 교육감이 정치논리를 앞세워 재지정평가를 통해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인다면 서울 자사고들은 향후 법적대응은 물론 교육의 자율과 미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나 유관단체와도 연대해 맞설 것이다”고 말했다.
교육청과 자사고 사이의 갈등이 전면화 되면서 헌재의 위헌여부 결정에도 고입혼란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교육당국이 여전히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어 교육계의 우려가 높다. 한 교육전문가는 “헌재가 위헌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렸지만 자사고들의 지정취소 여부 자체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수요자들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교육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애초에 자사고 관계자들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까지 헌법소원에 동참한 사실은 그만큼 교육당국이 독단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수요자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지난해 입시에선 혼란이 극심했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재지정평가의 기준을 상향하며 현장의 갈등을 다시 부추겼다. 실제로 헌재가 정책남발로 인한 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내린 이중지원 금지에 대한 위헌 결정을 교육당국은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사고들이 행정소송을 예고하며 고입 불확실성이 가중된 현재의 상황은 교육당국이 스스로 자초했기 때문이다. 최대 피해자는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수요자들이다”고 주장했다.
<2020고입 판도.. ‘수시실적에 따른 옥석가리기’> 전문가들은 헌재의 결정이나 자사고 재지정평가 등에 따른 고교유형별 유불리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을 경계했다. 고교의 유형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른 학교경쟁력을 중심으로 ‘옥석가리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요자들은 교육경쟁력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수시실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같은 고교유형 사이에서도 학교마다 수요자들의 선호도 차이가 상당하다. 학교의 유형이 아닌 수시체제의 성과를 토대로 입시전략을 세우는 것이 혼란스러운 입시환경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자사고나 외고 가운데서도 자연스럽게 학교들이 선별되고 있음에도 교육당국의 인위적인 개입이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헌재의 결정과 함께 고입의 흐름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입 수시비중 확대되면서 내신이 불리한 자사고의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학교유형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의 경우 매년 수시로 50명 내외의 서울대 등록자를 배출한다. 학교의 규모를 생각해봤을 때 내신이 다소 낮은 학생들의 실적도 상당한 셈이다. 결국 수시실적을 기반으로 한 학교경쟁력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며 “학교유형별 유불리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상대적으로 내신을 유지하기 쉬운 일반고가 무조건 유리한 것도 아니다. 자사고나 외고는 물론 일반고 사이에서도 수시실적이 우수한 학교들 중심으로 수요자의 선호가 높은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의 합리적 선택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자사고와 외고 폐지를 시도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수람 기자 sooram@verita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