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0일 일요일

취업 깡패 전·화·기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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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전자·전기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과의 첫 음절을 딴 신조어입니다. 전통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의예 수의학 한의학 치의예 간호 등 의학·보건 계열을 빼면 이들 학과는 평균 취업률 80%를 상회하며 취업 강자로 통합니다.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취업 한파를 ‘전화기’도 피해가긴 어렵습니다. 극심한 취업난과 IT 산업의 발달로 인한 컴퓨터공학의 수요 급증, 중공업 쇠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 학과의 취업률이 확실히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취업률은 다른 학과에 비해 확실히 높은 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취업이 잘되는 만큼 합격선과 경쟁률이 높기로 소문난 ‘취업 깡패 전화기’의 명성은 여전한지, 확인 들어갑니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전호성 도움말 김창묵 교사(서울 경신고등학교)·우연철 팀장(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장광재 교사(광주 숭덕고등학교)·정제원 교사(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 자료 대학 알리미·종로학원하늘교육·진학사·한국교육개발원


PART 1 자연 계열 최강자 학과는?

의대 합격선 뒤를 잇는 ‘전화기’ 학과

자연 계열 수험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집 단위는 여전히 의대다. 올 해 수시 모집 원서 접수 결과만 봐도 수험생 인원이 크게 줄었음에도 경쟁률은 지난해 30.06:1에서 소폭 오른 30.57:1을 기록했다. 합격선도 가장 높아서 정시 모집 배치표 기준으로 서울대 자연 계열 1위는 의대, 그 뒤를 이어 수리과학부 전기정보공학부 화학생물공학부 컴퓨터공학부 등이 포진해 있다. 특히 의대와 함께 전통적 강세를 보이는 학과는 전자·전기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과를 일컫는 ‘전화기’ 학과다. 지난 2016~2018 정시 모집 배치표를 기준으로 자연 계열 최상위 학과를 추려보면 의대 합격선 뒤를 잇는 ‘전화기’ 학과 중 특히 화학공학 계열의 강세가 두드러진다(표 1).

서울 경신고 김창묵 교사는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자연 계열 최상위 학생들의 최종 선택은 최근 각광받는 IT 계열 컴퓨터공학과 함께 ‘전화기’ 학과로 귀결된다. 이들 학과는 다른 공학 계열 학과에 비해 합격선이 높고, 경쟁도 치열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19 정시 모집에서 서울대 공학 계열 합격선(수능 표준점수 600점 대학 환산 기준)은 전기정보공학부 401.7점, 화학생물공학부 399.0점, 화학부 397.2점, 기계공학 전공 396.0점 등 으로 자연 계열 상위권을 차지했다.



2020 수시 모집 원서 접수 결과, ‘전화기’ 인기는 여전

정부는 그동안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일명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 공학 계열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에 따라 공학 계열은 지난 2011년 2천410개 학과에서 4년 만에 2천498개로 88개 학과가 늘어났다. 특히 ‘취업 보증수표’로 통하는 ‘전화기’ 중에서는 기계공학과가 182곳에서 221곳으로 39곳이나 급증했다. 기계공학과를 포함한 ‘전화기’ 학과는 지금도 모집 규모가 큰 편이다.

올해 17개 주요 대학의 수시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전화기’의 모집 인원은 전공 학과별로 1천200~1천 900여명에 달한다. 올해도 많은 수험생이 몰렸는데, 가장 많은 인원을 모집하는 전자·전기공학과는 1천 912명 모집에 1만6천246명이 지원해 8.5:1의 경쟁률을 보였다. 화학·고분자공학과는 1천482명 모집에 1만8천193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12.28:1이었고, 기계·항공학과는 1천223명 모집에 1만2천974명이 지원해 10.64: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표 2).

기계 전공 학과의 경쟁률만 따로 떼어 보면 30.58:1을 기록한 한양대(에리카) 기계공학과를 비롯해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30.44:1, 세종대 기계항공우주공학부 23.13:1, 중앙대 기계공학부 20.89:1, 서울시립대 기계정보공학과 18.43:1, 경희대(국제) 기계공학과 18.19:1, 서강대 기계공학 전공 15.90:1 등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김 교사는 “자연 계열 수험생들은 대체로 대학을 조금 낮춰 쓰더라도 ‘전화기’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보다는 학과를 기준으로 한 선택이 그만큼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PART 2 취업 한파 속 ‘전화기’ 취업률은?

역대급 취업난, 공학 계열도 취업률 추락

최근 4년간 대학 전공 계열별 취업률을 보면 의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이 타격을 받았다. 특히 취업이 잘되는 전공으로 여겨지는 공학 계열의 취업률 하락이 두드러졌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의 취업률 하락폭이 2%p 안팎인 데 반해 공학 계열은 5.6%p 하락했다(그래프). 서울 숭의여고 정제원 교사는 “그동안 교육부는 취업이 잘되는 공학 계열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유도해왔다. 이에 따라 공학 계열 졸업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취업자 증가 폭은 작아 취업률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서울·수도권 지역 근무를 원하는 구직자가 많은 데 반해, 공학 계열 취업처는 주로 지방에 집중돼 있는 측면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일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 산업 경기에 따라 취업 시장이 영향을 많이 받는 조선·건축 등에 비해 ‘전화기’는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의 정보통신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영훈(가명) 씨는 “조선과 중공업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IT 쪽에서 채용을 많이 했는데 그 역시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선배들 얘길 들어보면 불과 5~6년 전만 해도 큰 노력 없이 취업률이 80% 중후반을 기록했다는데, 지금은 아무리 ‘전화기’ 학과라 해도 10명 중 7명이 취업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IMF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T 산업의 발달과 국내외 산업 환경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전화기’ 전반의 취업률은 다른 학과에 비해 높은 편이다.


공학 계열 취업률 하락에도 ‘전화기’는 선방

최근 취업률이 큰 폭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학 계열은 계열별 취업률 1위에 올라 있다. 특히 ‘전화기’의 취업률이 강세를 보이는데, 주요 대학의 2017년 기계공학과 취업률을 비교하면 고려대(90.9%) 동국대 (90.0%)를 비롯해 연세대 서울대 인하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의 취업률이 85%를 웃돌며 강세를 나타냈다 (표 3). 정 교사는 “최근 채용 시장의 눈에 띄는 변화는 대규모의 정규 채용 시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3, 4학년 대학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직무별로 인턴을 뽑아 필요할 때 상시 채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특히 기업들이 이공 계열을 선호하다 보니 문과생들의 취업 여건은 더욱 어렵게 됐다”고 전했다.



PART 3 ‘전화기’ 학과의 변신과 취업 전망

지역 소재 공공기관 취업에 유리한 지역 거점 국립대·지방 사립대의 ‘전화기’

‘취업 강자 전화기’가 주목받게 된 것은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전기·전자·반도체(전자·전기공학), 석유화학·정유(화학 공학), 기계·자동차·조선(기계공학) 산업에 기반을 두고 많은 인력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IMF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T 산업의 발달과 국내외 산업 환경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취업률은 다른 학과에 비해 높은 편이다.

기술 융합이 세상을 바꾸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이들 학과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존의 전자공학과가 항공전자공학과나 융합전자공학과로, 전기공학과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로, 화학공학과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나 화공생명공학과로, 기계공학과가 기계로봇에너지공학과로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다.

광주 숭덕고 장광재 교사는 “학과 이름이 바뀌고 모집 단위가 달라 짐에 따라 과년도 취업률을 비교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최근 2, 3년 새 전기공학과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는 추세인데, 학과 이름에 ‘전기’ 라는 이름만 들어가도 합격선과 경쟁률이 오를 정도다. 특히 광주 전남 지역은 한국전력공사와 계열사의 채용 규모가 커 관련 학과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혁신도시 지역 인재의 광역별 채용 제도를 활용하면 취업의 문이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극심한 취업 난으로 인해 취업을 고려한 학과 선택이 점점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광주·전남 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 등 대형 공기업이 포진해 있다. 이 중 채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은 한국전력공사와 계열사로 이들 기업이 지난해 채용한 전체 신입사원은 2천551명에 달한다. 이 중 지역 인재 추천 채용 제도로 332 명이 채용됐다. 장 교사는 “졸업자 규모가 크고 산업 수요가 많은 공학 계열의 취업률은 대학이나 학과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다른 계열에 비해 확실히 높은 편이다. 지역 인재 추천 채용 제도 등을 감안해 취업 전략을 세운다면 지역 거점 국립대의 ‘전화기’ 진학도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취업률은 기계 › 전자·전기 › 화학 순

‘전화기’ 중 기계공학과는 이공 계열 학과 안에서 취업 률이 가장 높은 학과로 통한다. 실생활에 필요한 기계의 설계와 생산부터 자동차, 초고속 열차, 인공위성, 에너지, 로봇, 인공장기, 나노기술 등 미래의 첨단 기술을 다루기 때문. 세 전공 학과 중 취업률이 가장 낮긴 하지만, 화학공학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지 등 전자재료와 플랜트, 섬유, 석유화학, 정밀화학, 정유 산업, 조선해양 등 응용 범위가 넓은 학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력 수요가 꾸준한 편이다.

전자·전기공학과는 한때 ‘2점대 학점에 토익 600점도 대기업에 들어가는 학과’로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국내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학과이기 때문에 인력 수요가 많아 취업률과 합격선 모두 높은 학과로 알려져 있다. 장 교사는 “전남대 전기공학과만 봐도 정시 합격자 평균 수능 등급이 2017년 2.4에서 지난해 1.84로 상승했다. 의예과 다음으로 합격선이 높았던 수학교육과 등급이 2018년 2.1 등급에서 지난해 2.3등급으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오른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전남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할 것인가, 서울 상위권 대학의 비 ‘전화기’ 학과에 진학할 것인가의 문제 앞에서는 선택이 쉽지 않다고. 장 교사는 “지역과 학교, 수험생의 입장과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광주 지역 일반고인 우리 학교는 대체로 서울로 진학을 결정하는 수험생이 많다. 내신 1등급 중후반대의 학생이라면 고려대와 연세대 등 최상위권 대학에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울질하는 곳이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지역 거점 국립대의 ‘전화기’ 선택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반면 인문 계열 최상위 학과인 경영학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복수 전공이나 전과 등의 방법으로 경영학을 전공하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굳이 경영학과를 고집하기보다는 대학 수준을 올리는 쪽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취업률 100%인 ‘전화기’ 학과가 있다!?

대학 알리미에서 공시한 2018년 ‘졸업생 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방 소재 대학 ‘전화기’ 중 취업률 100%인 학과도 적지않다(표 4). 우선 경북 구미에 있는 경운대 항공전자공학과는 2018년 대학 알리미 공시 기준으로 취업률 100%다. 2012년 국가전략산업인 항공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전략으로 디지털전자공학과를 개편해 생겨났다. 2학년에 올라갈 때 전자와 항공정비 중 자신의 진로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경북대 응용화학공학부도 2018년 대학 알리미 공시 기준 취업률 100%인 학과다. 간혹 화학과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학과가 순수 학문에 가깝다면 화학공학은 응용 학 문으로 공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이외에 화학공학 관련 학과로는 한양대(에리카) 응용화학 전공, 동국대 생명화학공학과가 취업률 100%로 집계됐다.

기계 관련 전공으로는 금오공대 기계공학부를 비롯해 공주대 기계자동차공학부(야간), 충남대 기계·금속공학교육 전공 등이 취업률 100%를 기록했다. 이들 학과는 졸업 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SDS 삼성중공업 LG화학 현대자 동차 기아자동차 등 주로 대기업과 공기업에 취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우연철 팀장은 “‘전화기’의 경우 상대적으로 취업이 잘되는 것은 맞지만, 학과 공부가 너무 어려워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취업률만 보고 학과를 선택하기보다는 해당 학과의 학문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소질과 적성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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